라스트 제다이 영웅 서사의 교과서라 불리던 스타워즈가 오히려 그 공식을 스스로 파괴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 질문의 답을 눈앞에서 목격한 기분이었습니다. 기대와 배신감, 그리고 묘한 감탄이 동시에 밀려오는 경험, 그게 바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였습니다.
전설을 무너뜨리는 해체주의적 연출
루크 스카이워커가 건네받은 라이트세이버를 그냥 어깨 너머로 던져버리는 장면, 처음 보셨을 때 어떠셨습니까. 저는 솔직히 그 순간 극장에서 등받이에서 몸을 떼지 못했습니다. 오리지널 3부작을 어릴 때부터 접한 분들이라면 그 장면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거의 선전포고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이 영화에서 해체주의(Deconstruction)적 접근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해체주의란 기존에 굳어진 서사 구조나 관습을 의도적으로 뒤집고 재해석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루크가 영웅이 아닌 도망자로, 제다이 철학 자체가 오류가 있는 유산으로 묘사되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신화를 단 두 시간 반 만에 재정의하려 한 셈이지요.
평론가적 시각에서 이 시도는 분명 용감했습니다. 특히 크레이트(Crait) 행성의 소금 사막 전투 장면은 붉은 지층과 흰 표면이 뒤섞이는 시각적 대비를 통해 '충돌'이라는 주제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수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담함이 과연 모든 관객을 설득했냐고 묻는다면,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기대를 낮추고 본 저조차 몇몇 장면에서는 감독의 의도가 지나치게 앞서 나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시퀄 트릴로지의 구조적 문제와 서사 연속성
시퀄 트릴로지(Sequel Trilogy)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제작된 에피소드 7, 8, 9를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이 세 편은 원래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기획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라스트 제다이>를 보다 보면 에피소드 7이 공들여 던져놓은 떡밥들이 의도적으로 무력화되는 순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노크(Snoke) 처리 방식입니다. 에피소드 7에서 퍼스트 오더의 최고 지도자로 등장해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던 스노크가 이 영화에서 허무하게 처리된 장면은 팬덤 내에서 지금도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예상 밖이었습니다. 반전을 위한 반전에 가까웠고, 그 여파는 에피소드 9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팬덤 논란은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영화 평가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 따르면 <라스트 제다이>의 평론가 점수는 91%에 달하지만 관객 점수는 42%에 그쳤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이처럼 전문 평론가와 일반 관객 사이의 극단적인 괴리는 스타워즈 시리즈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수치 하나가 이 영화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라이언 존슨의 연출 의도 자체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시리즈를 이어가야 하는 중편의 역할, 그리고 수십 년의 팬덤이 가진 정서적 자산을 함께 다뤄야 했다는 점에서 서사의 내적 개연성(Narrative Coherence)이 흔들린 것은 분명한 약점입니다. 내적 개연성이란 이야기 안에서 사건과 캐릭터의 행동이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정도를 뜻합니다.
카일로 렌과 레이, 그리고 포스 다이애드의 가능성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카일로 렌과 레이의 관계였습니다. 두 캐릭터가 포스(Force)로 연결되어 서로의 공간을 공유하는 포스 다이애드(Force Dyad) 설정은 스타워즈 세계관에서도 상당히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포스 다이애드란 두 존재가 포스를 통해 하나의 생명력처럼 연결되는 극히 드문 유대를 의미합니다.
애덤 드라이버와 데이지 리들리의 케미스트리는 이 설정을 충분히 살려냈습니다. "과거를 죽여라, 그래야만 네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카일로 렌의 대사는 영화 전체의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캐릭터 자신의 심리를 집약한 명대사로 꼽힙니다. 이 장면을 볼 때 저는 단순한 빌런의 회유 장면이 아니라 감독의 창작 철학 선언처럼 들렸습니다.
반면, 레이의 출생 비밀을 '아무도 아닌 자의 자녀'로 처리한 결정은 여전히 아쉽습니다. 에피소드 7부터 쌓아온 복선과 팬들의 기대를 단번에 잘라낸 이 처리는 서사적 용기라기보다는 다음 편 에피소드 9의 연출자에게 부담을 전가한 선택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에피소드 9는 이 결정을 사실상 번복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이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캐릭터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카일로 렌: 스승 스노크를 직접 제거하며 기존 위계를 전복, 단순 빌런에서 복합적 인물로 진화합니다.
- 레이: 출생의 미스터리보다 스스로의 선택이 정체성임을 선언하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 루크 스카이워커: 영웅 신화를 거부하고 인간적 실패를 인정하는 인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 홀도 제독: 자폭 공격 장면은 시각적으로 압도적이었으나, 스타워즈 세계관 내 전술 설정과의 충돌로 설정 오류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올드팬의 혹평, 그 이면에 있는 진짜 문제
시퀄 시리즈 전반에 걸친 올드팬들의 혹평은 단순히 "옛날이 좋았다"는 향수(Nostalgia)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닙니다. 향수란 과거에 대한 정서적 애착이 현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비판은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지점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핀과 로즈 티코가 카지노 행성 칸토 바이트(Canto Bight)에서 벌이는 서사는 저도 직접 보면서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법 무기 거래상들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담으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것이 본편의 긴장감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서브플롯(Subplot)으로만 기능했습니다. 서브플롯이란 메인 이야기와 병렬로 진행되는 보조 서사를 의미하는데, 이 경우에는 메인 서사의 흡인력을 오히려 분산시켰습니다.
한편, 스타워즈 세계관 연구자인 파블로 히달고를 포함한 루카스필름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홀도 제독의 초공간 자폭 공격은 세계관 내에서 극히 드문 조건이 맞아떨어진 예외적 상황으로 해석됩니다(출처: StarWars.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왜 이전에는 쓰지 않았나"라는 팬들의 질문을 막지 못한 것은, 세계관 설정의 일관성 관리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시퀄 시리즈 전편을 정주행한 뒤 혹평을 미리 알고 기대감을 낮춘 상태에서 시청했습니다. 그 덕분에 엄청나게 나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이 영화의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화를 파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잔해 위에 세운 새로운 질서가 충분히 설득력 있었는가 하는 물음에는 아직도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아름다운 문제작'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시각적 미학과 캐릭터 해석에서 분명한 성취를 이뤘지만, 시리즈 전체의 연속성과 팬덤의 정서적 자산을 충분히 존중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에피소드 4부터 순서대로 시청한 뒤 이 영화를 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 이 영화가 무엇을 파괴하려 했는지, 그 의도가 얼마나 과감했는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전설은 스스로 불타야 다음을 밝힌다
스타워즈가 스스로를 부수기로 했다. 라스트 제다이는 팬들이 기대한 모든 것을 비틀고, 뒤집고, 때로는 산산조각 낸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영웅이 아니었고, 포스의 진실은 단순하지 않았으며, 혈통은 운명이 아니었다. 그 파괴가 불편했던 만큼,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루크의 변화가 이 영화의 가장 뜨거운 논쟁이었다. 전설적인 영웅이 섬 끝에 숨어 세상을 외면한다는 설정은 배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그것은 신화가 인간이 되는 과정이었다. 상처받고 두려워하며 도망친 노인이, 마지막 순간 가장 위대한 방식으로 돌아오는 그 여정이 묵직하게 가슴을 눌렀다.
레이와 카일로 렌의 포스 연결은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독창적인 서사 장치였다. 적과 내면을 나누고, 서로의 고독을 목격하는 그 관계가 단순한 선악 대결을 훌쩍 넘어섰다. 스노크 알현실 전투 씬은 붉은 조명 아래 펼쳐진 완벽한 긴장과 해방이었다.
홀도 제독의 희생은 말없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소리 없는 그 장면 하나가 어떤 폭발보다 강렬했다.
다만 핀과 로즈의 서브플롯은 흐름을 분산시켰고, 전체적인 구조의 균형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라스트 제다이는 용감했다. 과거를 놓아야 미래가 온다고, 전설조차 내려놓아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루크가 석양 속으로 사라지던 그 순간, 시리즈는 새로운 언어로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