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3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삼스파, 멀티버스, 팬서비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팬서비스(Fan Service)란 팬이 원하는 장면을 영화 안에 적극적으로 집어넣는 연출 방식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팬서비스가 넘치는 영화가 무조건 좋은 영화일까요? 좀비딸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떠올랐습니다.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저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동시에 뭔가 허탈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복잡한 감정을 지금 다시 정리해보려 합니다.

삼스파, 꿈이 현실이 된 순간

저는 마블 캐릭터 중에서 스파이더맨을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좋아해왔습니다. 아이언맨이 화려한 자본과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한다면, 스파이더맨은 늘 불안정하고 어딘가 부족한데도 끝내 책임을 놓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그 점이 저한테는 훨씬 더 마음에 박혔습니다. 그래서 삼스파(Three Spider-Man), 즉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한 화면에 등장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너무 원하던 일이라 오히려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극장에서 직접 그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세 명이 나란히 서서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그 장면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었습니다. 2002년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을 처음 봤던 기억, 앤드류 가필드가 그웬 스테이시를 구하지 못하던 장면에서 느꼈던 먹먹함,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팬덤(Fandom), 즉 특정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팬들의 집단적 애정과 문화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냉철하게 보려고 해도 눈물이 핑 도는 건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장면은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오래 따라온 사람일수록 그 감동의 밀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단순히 "유명한 배우 셋이 나왔다"가 아니라, 20년 넘는 세월 동안 쌓인 각자의 서사가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경험이었으니까요.

멀티버스 설정의 편의주의적 한계

그런데 냉정하게 돌아보면, 이 영화의 서사 구조는 꽤 헐겁습니다. 영화의 발단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 실수에서 시작됩니다. 개연성(蓋然性), 즉 이야기 안에서 사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논리적 인과관계가 초반부터 흔들립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만큼 경험 많은 마법사가 왜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그 행동 동기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치는 대개 제작진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을 먼저 정해놓고, 그것을 연결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 플롯을 끼워 맞추는 방식입니다.

멀티버스(Multiverse)란 서로 다른 평행 우주들이 공존한다는 개념으로, 마블 세계관에서는 다양한 버전의 캐릭터와 사건이 교차하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이 설정은 분명 창의적인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어차피 다른 우주 이야기니까"라는 편의주의의 도구로 남용될 위험이 있습니다. 노 웨이 홈에서는 아쉽게도 그 위험이 일부 현실이 된 것 같았습니다.

특히 과거 시리즈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관객에게는 이 영화의 감동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개별 영화로서의 자생적 완성도보다 시리즈의 총합에 기대어 서사를 끌고 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멀티버스 활용 방식과 세계관 전략에 대해서는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의 평론가 리뷰들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반복적으로 제기된 바 있습니다.

메이 숙모의 죽음, 소비된 명장면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입니다. 이 명제는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피터 파커라는 캐릭터가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입니다. 노 웨이 홈에서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메이 숙모의 죽음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극장에서 봤을 때 저는 기대가 컸습니다. 스파이더맨 서사에서 가장 무거운 감정선이 담긴 순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 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쳐버렸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한 캐릭터가 영화 안에서 겪는 내면의 변화와 성장 곡선의 관점에서 보면, 메이 숙모의 죽음이 피터에게 미치는 심리적 충격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은 채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버립니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이야기 전개를 위한 소모품처럼 처리된 느낌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벤 삼촌의 죽음이 토비 맥과이어판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놓았던 것처럼, 메이 숙모의 죽음도 그만큼 무게감 있게 다뤄졌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팬으로서 가장 기대했던 감정선이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며 허탈함이 컸습니다.

노 웨이 홈에서 팬서비스와 서사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 구조적 문제는, 마블이 페이즈 4(Phase 4) 이후 지속적으로 받아온 비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페이즈 4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마블이 새롭게 시작한 세계관 확장 단계를 말하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이 서사보다 이벤트에 집중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팬서비스의 결정판, 그럼에도 잊지 못할 영화

그렇다면 노 웨이 홈은 실패한 영화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남긴 것들을 냉정하게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삼스파의 동반 등장: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가 한 화면에 서는 장면은 스파이더맨 팬이라면 평생 잊지 못할 순간입니다. 이 기획 자체가 마블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 피터 파커의 진정한 독립: 어벤져스의 막내로 보호받던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모든 기억과 관계를 잃은 채 홀로 다시 시작하는 결말은 가슴 아프면서도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3. 비주얼 완성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특유의 기술력과 자본이 만들어낸 미장센(Mise-en-scène)은, 서사의 헐거움을 일정 부분 메워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공간, 배우의 위치 등이 만들어내는 총체적 영상미를 뜻합니다.
  4. 시리즈의 새로운 발판: 결말의 피터 파커는 이제 진짜 혼자입니다. 그 고독한 출발이야말로 앞으로의 스파이더맨 이야기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나오며 느꼈던 감정은 "아, 이제 진짜 피터 파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였습니다. 아쉬움과 감동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지만, 그 감정 자체가 이 영화가 그만큼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스파이더맨 20년 역사에 대한 마블의 헌정이자, 새로운 장을 여는 신호탄으로서 이 영화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마블의 스파이더맨 관련 공식 자료는 마블 공식 사이트(Marvel.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 웨이 홈은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멀티버스라는 편리한 장치 뒤에 숨은 개연성의 구멍, 감정선이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핵심 장면들, 이전 시리즈를 모르는 관객에게는 절반의 영화가 되어버리는 구조적 문제까지.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팬으로서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을 본 순간, 극장 전체가 하나가 되었다

마블 영화를 꽤 오래 챙겨봐 왔지만, 솔직히 노 웨이 홈 개봉 전까지는 기대치를 일부러 낮춰두고 있었다. 멀티버스니 레거시 캐릭터니 하는 소문들이 워낙 많이 돌아서, 오히려 실망할까봐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방어막은 영화가 시작된 지 두 시간 만에 완전히 무너졌다.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가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극장 안이 터질 듯한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고, 옆자리 모르는 관객과 눈이 마주쳐 함께 웃었다. 영화관에서 그런 일체감을 느껴본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진짜로 무너뜨린 건 화려한 등장이 아니었다. 앤드류 가필드가 MJ를 받아내는 장면이었다. 자신의 시리즈에서 구하지 못했던 그웬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옆에서 조용히 같이 울고 말았다. 단순한 팬서비스를 넘어, 캐릭터의 상처가 치유되는 장면이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단순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마블과 함께 자라온 모든 관객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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