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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화성 생존, 하드SF, 인류애)


마션 영화를 그냥 "우주 버전 로빈슨 크루소"쯤으로 가볍게 봤습니다. 그런데 주말 저녁 은은한 조명 아래 다시 꺼내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단순한 생존 스릴러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한 인간이 감자를 키우고, 디스코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고, 카메라 앞에서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서 팍팍한 일상의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날아가는 기분을 받았습니다.

화성 한복판에 혼자 남겨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2015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원작 소설의 첫 문장은 "나는 좆됐다"로 시작하는데, 이 한 줄이 책 전체의 톤을 정확하게 요약해 줍니다. 처음 그 문장을 접했을 때 "어떻게 이런 시작을 생각했을까" 싶었습니다. 비장하거나 우울하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기묘한 유쾌함이 느껴졌거든요.

영화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NASA 아레스 3(Ares III) 탐사대가 화성을 탐사하던 중 모래폭풍을 만나고, 팀원인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가 사망했다고 판단한 나머지 대원들이 그를 두고 화성을 떠납니다. 극적으로 생존한 와트니는 남은 식량과 기지 설비만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하드 SF(Hard Science Fiction)라는 장르 개념이 중요합니다. 하드 SF란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실제 과학 이론을 충실히 반영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SF의 한 갈래입니다. <마션>은 화성의 중력, 대기 조성, 방사선 환경까지 고려하면서 스토리를 짜 넣은 덕에, 그냥 보고 있어도 "이건 정말 가능할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NASA는 이 영화를 위해 3주간 촬영에 협조했고, 촬영 장소를 대여하는 등 이례적인 전폭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NASA가 민간 영화 제작에 이 정도 규모로 협력한 사례는 극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요르단의 와디 룸(Wadi Rum) 사막을 로케이션 현장으로 활용했는데, "감독이 화성에 직접 다녀온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붉고 광활한 화성의 질감을 압도적으로 재현해 냈습니다.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계속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와트니가 식물학 전공자였기 때문에 감자 재배를 설계하고, 화성의 토양에 동료들의 배설물을 섞어 비료로 활용하는 바이오매스 재생 전략을 짤 수 있었던 것이지, 지식 없이는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과학적 서스펜스와 디스코 음악이 만들어낸 독특한 생존 문법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전반부 와트니의 문제 해결 과정입니다. 거창한 악당도 없고, 외계 생명체도 없습니다. 장애물은 오직 화성이라는 환경 그 자체뿐입니다. 와트니가 카메라를 보며 브이로그처럼 일지를 남기는 장면은, 마치 우리가 그의 혼잣말을 엿듣는 것 같은 묘한 친밀감을 줍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고른 선택 중 가장 감각적이었던 건 사운드트랙 구성입니다. 화성의 황량한 풍경 위로 "Stayin' Alive", "I Will Survive" 같은 70년대 디스코 명곡들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고독함과 유쾌함이 동시에 충돌하는 독특한 미장센(Mise-en-scène)이 완성됩니다. 미장센이란 화면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배경, 인물의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영화 연출 개념입니다. 이 음악 선택은 와트니의 성격을 설명하는 대사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그의 캐릭터를 전달했습니다.

그렇다면 와트니가 실제로 화성에서 구사한 생존 전략은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영화에서 묘사된 핵심 방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바이오매스 재생(Biomass Regeneration): 동료들이 남긴 배설물을 비료로 삼아 화성 토양을 개량하고 감자를 재배합니다. 바이오매스 재생이란 유기물을 분해·순환시켜 생산성 있는 토양을 만드는 기술을 뜻합니다.
  2. 전기분해(Electrolysis)를 이용한 물 생성: 로켓 연료인 하이드라진(Hydrazine)을 분해하여 수소를 추출하고, 이를 연소해 물을 만들어냅니다. 하이드라진이란 우주선 추진제로 사용되는 화합물로, 고농도에서는 폭발 위험이 있습니다.
  3. 패스파인더(Pathfinder) 탐사선 교신: 1997년에 화성에 착륙한 패스파인더 탐사선의 위치를 추적해 카메라를 통한 모스 부호 방식으로 지구와 교신에 성공합니다.
  4. MAV(Mars Ascent Vehicle) 개조: 화성 이탈을 위한 비행체를 경량화하여 구출 작전의 속도와 궤도를 맞춥니다. MAV란 화성 표면에서 이륙하기 위해 설계된 비행 모듈을 뜻합니다.

이 목록을 다시 훑어보면 단순한 의지의 서사가 아니라는 게 명확해집니다. 저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나였다면 저 중 하나라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아마 전기분해를 시도하다가 폭발 사고로 끝났을 것 같습니다. NASA가 공개한 화성 탐사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실제 화성의 대기압은 지구의 약 0.6%에 불과하며, 평균 기온은 영하 60도에 달합니다(출처: NASA Mars Exploration). 이런 환경에서 와트니가 유머를 잃지 않았다는 게, 돌이켜 보면 가장 비현실적인 설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의 우주생물학 연구에 따르면, 실제 화성 토양에는 퍼클로레이트(Perchlorate)라는 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지구 식물 재배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합니다(출처: Nature Astrobiology). 영화적 허용 범위 안에서 과학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그 허용 범위가 다른 SF 영화들에 비해 현저히 좁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여섯 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옳은가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진짜 질문이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NASA 국장 테디 샌더스(제프 다니엘스 분)는 "화성에 남은 한 명을 구하려다 귀환 중인 다섯 명까지 잃을 수 있다"며 구출 작전을 반대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보면서 저도 한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 하고요.

영화는 이 딜레마에 대한 답으로 인류애(Humanitarianism)라는 카드를 꺼냅니다. 인류애란 인종, 국적, 이념을 초월해 모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보편적 가치를 뜻합니다. 와트니의 대사가 이 주제를 정확하게 대변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을 도우려는 본능이 있다. 등산객이 조난을 당하면 수색대를 보내고, 지진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면 전 세계가 구호품을 보낸다. 이런 본능은 모든 문화권에 존재하며 예외는 없다." 제가 이 대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나 희생 같은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본능 안에 연대가 이미 내장되어 있다는 걸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한 가지 불편한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와트니가 평범한 대원이었다면? 뛰어난 식물학자이자 공학적 재치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규모의 구출 작전이 같은 방식으로 추진되었을까요? 영화는 "누구나 구출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영향력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도움받고 싶어도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 질문이 계속 따라다닌 것은, 작품이 그만큼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NASA 우주비행사 대니 올리바스는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고를 언급하며 "<마션>은 가장 실화에 가까우면서 인간적인 이야기"라고 평했습니다. 7명의 동료를 잃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그 무게가 남달랐습니다. 과학적 고증 위에 인간의 연대를 얹은 이 영화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