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나존스 레이더스를 봤을때 "이게 40년도 넘은 영화라고?" 하며 눈을 의심했습니다. 어릴 적 명절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손에 땀을 쥐며 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얼마 전 아이와 함께 다시 꺼내 보면서 그 감탄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걸 새삼 확인했습니다. 1981년작 인디아나 존스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도대체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수십 년째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걸까요?
아무도 만들기 싫어했던 영화가 탄생한 배경
혹시 이 영화가 처음에 헐리우드 메이저 제작사들에게 줄줄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스타워즈의 제작자 조지 루카스가 스필버그 감독에게 직접 제안한 프로젝트였는데도, 당시 대형 스튜디오들은 어드벤처 장르라는 이유만으로 고개를 저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판단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파라마운트 픽처스(Paramount Pictures)만이 제작을 승낙했고, 그렇게 어렵사리 세상에 나온 영화가 바로 레이더스입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란 1912년 창립된 미국의 메이저 영화 제작·배급사로, 헐리우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스튜디오 중 하나입니다. 이 한 번의 결단이 영화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캐스팅 비하인드도 못지않게 흥미롭습니다. 원래 인디아나 존스 역할은 TV 시리즈 탐정 매그넘의 주연 배우였던 톰 셀릭에게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 계약이 남아 있어 출연이 불가능해지면서, 스타워즈에서 한 솔로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해리슨 포드가 낙점되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조지 루카스 본인이 처음에는 해리슨 포드를 반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뭐였냐면, 자신이 참여한 작품에 같은 배우를 두 번 쓰고 싶지 않다는 개인적인 신념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결국 마땅한 대안이 없어 포드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 결과 해리슨 포드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톰 셀릭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 되었겠지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루카스의 신념은 이후 스타워즈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면서 본인 스스로 깨게 됩니다. 역사의 장난 같기도 하고, 결국 사람이 결정을 내릴 때는 그 순간의 상황이 전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촬영 현장의 비화와 명장면이 만들어진 방식
레이더스를 이야기하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검을 화려하게 휘두르는 복면 검객을 마주한 인디아나 존스가 긴 대결 대신 그냥 권총으로 쏴버리는 그 유명한 씬입니다. 제가 아이와 함께 이 장면을 다시 봤을 때, 아이가 "왜 싸우지 않아요?" 하고 물었는데, 저도 웃으면서 그 뒷이야기를 설명해 줬습니다.
원래 각본에는 채찍을 이용해 칼을 떨어뜨리는 격투 장면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촬영 당시 스턴트 팀이 현지에서 식중독에 걸리면서 긴 격투 씬 촬영이 불가능해졌고, 해리슨 포드가 즉흥적으로 "그냥 쏴버리는 건 어떠냐"고 제안한 것이 그대로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프랑스어에서 온 영화 용어로, 쉽게 말해 카메라 앞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인물의 동선, 조명, 배경, 소품 등을 총칭하는 개념입니다. 이 장면의 미장센은 철저한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 우연과 즉흥의 산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유머 코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코브라 대면 장면도 촬영 비화가 있습니다. 당시 CG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해리슨 포드와 실제 코브라 사이에는 투명 유리 한 장만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코브라가 독을 뿜었다는 후일담을 들었을 때 저도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가 뱀을 극도로 싫어하는 캐릭터 설정이 따로 있는데, 그 설정을 알고 보면 해리슨 포드의 표정 연기가 얼마나 진짜에 가까웠을지 짐작이 갑니다.
영화 전반을 이끄는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작곡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만든 레이더스 마치(Raiders March)는 키네틱 액션(Kinetic Action), 즉 화면 속 물리적 움직임이 관객에게 직접적인 체감을 전달하는 액션 연출과 맞물려 거의 완벽한 시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키네틱 액션이란 CGI 없이 실제 몸과 물리적 힘으로 구현하는 액션을 뜻하는데, 오늘날의 영화에서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첫 음이 흘러나오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실제로 존 윌리엄스는 레이더스를 포함한 스필버그와의 협업으로 영화 음악의 기준을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출처: IMDb - John Williams)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사 없이 인물의 동선과 편집만으로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완성도
- CG 없이 실제 스턴트와 물리적 촬영으로 만들어 낸 트럭 추격전의 물리적 타격감
- 유머와 긴장을 교차 배치하는 완급 조절, 현대 마블 영화의 유머 코드와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 레이더스 마치로 대표되는 존 윌리엄스의 오케스트라 스코어가 주는 몰입감
지금 아이와 함께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제가 아이와 함께 레이더스를 다시 꺼내 본 날을 돌이켜 보면, 솔직히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요즘의 화려한 특수효과(Special Effects, 줄여서 SFX라고도 합니다. SFX란 물리적·광학적·디지털 기술로 영화 속 현실에 없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 기법을 통칭합니다)에 익숙해진 아이가 40년 된 영화를 지루해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오프닝의 황금 우상 교체 장면에서 아이가 제 팔을 꼭 붙잡더니 "엄마, 저거 진짜 바위에요?!" 하고 눈을 반짝였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가방 끈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거실 구석구석을 탐험가처럼 뛰어다녔고요. 시대를 초월하는 영화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이라는 개념이 이 영화를 통해 얼마나 낭만적으로 포장될 수 있는지도 흥미롭습니다. 영화 속 악당 벨로크(폴 프리먼 분)가 "회중시계를 땅에 묻어 100년 뒤 꺼내면 그게 바로 보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이 대사가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고고학(Archaeology)이란 인류가 남긴 물질적 흔적을 발굴하고 해석하여 과거를 재구성하는 학문입니다. 유물의 가치는 그 자체보다 맥락과 시간이 결정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악당의 대사로 자연스럽게 녹여낸 각본의 솜씨가 놀랍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성궤(Ark of the Covenant)는 성서에 등장하는 실제 종교적 유물로, 모세가 받은 십계명 석판이 담겨 있다고 전해지는 궤를 의미합니다. 성궤란 단순한 판타지 소품이 아니라 수천 년의 종교사와 연결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영화를 본 뒤 직접 관련 역사를 찾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성궤가 실제로 어디 있는지 찾아봤던 기억이 납니다. (출처: Britannica - Ark of the Covenant)
결국 레이더스가 증명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이야기의 힘, 연출의 정직함, 그리고 관객을 진짜로 대우하는 태도가 있는 영화는 세대를 건너뜁니다. 아직 못 보신 분이 있다면 DVD든 스트리밍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가능하다면 아이와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보시면 더 좋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거실이 잠깐 탐험 기지로 바뀌는 경험을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