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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 리뷰 (줄거리, 대리만족, 공허함)


부자가 되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2019년 개봉한 영화 <돈>은 그 질문을 아주 불편하게 찌릅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를 보러 간 게 아니었습니다. 원래 보려던 <이스케이프 룸>의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상영 횟수가 많던 이 영화를 반쯤 체념하며 골랐는데, 그게 오히려 묘한 경험이 됐습니다.

보고 싶지 않았던 영화를 보게 된 날

솔직히 말하면, 스크린 점유율이 높은 영화를 저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유명 배우를 기용하고 홍보를 대대적으로 쏟아부으면 관람객 수는 자연히 올라갑니다. 그게 곧 영화의 완성도를 뜻하진 않죠. 직전에 봤던 <극한직업>도 솔직히 제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남편도 같은 의견이었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조명이 꺼지고 여의도 증권가의 타이핑 소리와 모니터 화면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건 단순히 "돈 벌고 싶다"는 판타지를 자극하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포스터 문구인 "평범하게 살아서 부자 되겠어?"는 분명히 자극적입니다. 취업난과 경제적 불안이 만연한 요즘, 저 문구에 끌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런데 영화가 실제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질문에 대한 꽤 불편한 대답이었습니다.

줄거리 — 클릭 한 번에 억이 찍히면 멈출 수 있을까

주인공 조일현(류준열 분)은 여의도 증권가에 신입 주식 브로커로 입성합니다. 브로커(broker)란 고객의 주식 매매를 대신 처리하고 수수료를 받는 중개인을 뜻합니다. 실력도 인맥도 없는 초짜인 조일현은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해고 위기까지 몰립니다.

그때 '번호표(유지태 분)'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나타납니다. 번호표가 지시하는 대로 주문을 넣으면, 클릭 몇 번만으로 억 단위의 수수료가 들어옵니다. 여기서 영화가 다루는 것이 바로 작전주(作戰株)입니다. 작전주란 특정 세력이 의도적으로 주가를 띄우고 개인 투자자들에게 떠넘기는 불법 주식 조작 방식을 말합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가장 무서웠던 건 조일현이 악당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돈이 절실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첫 번째 불법 거래 후 억 대의 수수료가 찍히는 순간, 그 얼굴에 번지는 표정은 기쁨인지 공포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괜히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이 거래를 쫓는 건 금융감독원 수석검사 한지철(조우진 분)입니다. 금융감독원(金融監督院)이란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 기관 전반을 감시하고 불법 거래를 적발하는 국가 기관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사냥개'로 불리는데, 조우진의 집요한 눈빛이 그 별명을 완벽하게 살려냅니다. 법적으로만 보면 우리가 응원해야 할 사람은 당연히 한지철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계속 조일현을 응원하고 있었을까요.

영화의 주요 사건들을 따라가면 이렇습니다.

  1. 신입 브로커 조일현, 실적 부진으로 해고 위기에 처함
  2. 번호표의 제안으로 주가 조작(불법 작전주 매매)에 가담, 단번에 억 단위 수익
  3. 이상 거래를 감지한 금융감독원의 추적 시작
  4. 번호표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이 하나씩 제거됨
  5. 조일현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호표의 제거 대상이 됨
  6. 결말: 번호표 체포, 조일현은 홀로 지하철을 탑승하며 사라짐

결말은 열려 있습니다. 조일현이 챙긴 돈을 다시 잃는 장면은 없습니다. 칼에 찔렸지만 살아남았고, 번호표는 잡혔고, 그는 경찰과의 약속도 어기고 홀로 사라집니다. 관객에게 판단을 맡기는 엔딩이지만, 저는 그 여운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대리만족 — 우리는 왜 불법을 저지르는 주인공을 응원하는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제 머릿속에 맴돈 질문이 이겁니다. 나는 왜 조일현을 응원했을까요?

감정이입(感情移入)이란 관객이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 장치를 정교하게 씁니다. 조일현은 취업 준비생처럼 조마조마하게 면접을 보고, 선배들에게 치이고, 월세 걱정을 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우리는 어느 순간 그와 같은 편이 됩니다.

그래서 그가 불법 거래로 돈을 벌어도, 분노 대신 아슬아슬한 스릴이 느껴집니다. 법적 잣대보다 감정이 먼저 작동하는 것이죠. 이건 영화의 서사 전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안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을(乙)'로 사는 피로감, 실력보다 배경이 중요한 구조에 대한 분노가 조일현을 응원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판타지에 올라탄 대리만족, 그게 이 영화가 흥행한 이유 중 하나라고 저는 봅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돈>은 개봉 당시 누적 관객 230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물론 이 대리만족이 마냥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조일현은 돈을 얻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잃어갑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돈이 많아질수록 조일현의 얼굴이 더 외로워 보였다는 겁니다. 그게 연출의 힘인지 류준열의 연기력인지, 아마 둘 다겠지만요.

공허함 — 얼마를 벌면 만족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결국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한가요?

심리학에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쾌락 적응이란 사람이 어떤 긍정적 사건을 경험한 뒤 시간이 지나면 그 만족감에 무뎌져 원래의 감정 상태로 돌아오는 현상을 뜻합니다. 1억을 벌면 5억이 목표가 되고, 5억이 생기면 10억을 바라보게 되는 심리가 이것입니다. 조일현이 멈추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수입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감 상승 폭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습니다.

왜 대기업 회장이, 정점에 오른 연예인이, 권력의 꼭대기에 선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길까요?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물질로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그 공허함을 조일현의 눈빛으로 시종일관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결론이 "역시 돈보다 마음이 중요해"라는 식의 뻔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지면 영화를 절반만 본 것입니다. 중요한 건 조일현이 잃어버린 것들 — 믿었던 동료, 사랑했던 사람, 자기 자신 — 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더 무섭습니다.

있는 그대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단단한 부자일 수 있습니다. 재산이 0원이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과, 수백억을 가지고도 늘 불안한 사람 중 누가 더 자유로울까요? 그 질문을 이 영화는 꽤 정직하게 건넵니다.

영화 <돈>은 완성도 높은 범죄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우리 안의 욕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불편한 거울입니다. 제가 처음에 반쯤 포기하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오히려 그날 본 것 중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영화가 됐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결말보다 자신이 누구를 응원하고 있는지를 한번 의식하며 보시길 권합니다. 그게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같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감상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