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넷플릭스로 다시 틀었더니 이상하게 더 빠져들었습니다. 2024년 개봉작 중 100억 원 이상 제작비를 들이고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몇 안 되는 한국 영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 이야기입니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왜 이렇게 의견이 갈릴까
베테랑2는 2024년 9월 13일 개봉했고, 장르는 범죄·액션·코미디, 상영시간은 118분입니다. 제작비 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도 상위 티어에 속합니다.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이란 총수입이 총비용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지점을 뜻합니다. 100억 원 이상 투입한 작품이 이 선을 넘었다는 것은, 단순히 관객이 많이 들었다는 것 이상으로 시장에서 의미 있는 검증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흥행과 평가가 꼭 일치하지는 않죠. 제가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도 그 간극이 느껴졌습니다. 전편이 워낙 명쾌했기 때문에 더 비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1편은 권선징악(勸善懲惡), 즉 선이 이기고 악이 응징받는 구조가 단단하게 들어맞았고, 유머와 액션이 서로 리듬을 맞추며 돌아갔습니다. 2편은 그 경쾌함을 의도적으로 걷어냈습니다. 무거워진 건 맞는데, 그 무게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방식이 고르지 않았습니다.
사적 제재(私的制裁)란 국가 공권력이 아닌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집행하는 응징 행위를 가리킵니다. 영화는 이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는데, 흉악범을 직접 처단하는 '해치'에 열광하는 여론과 그것을 막으려는 형사의 충돌이 서사의 핵심 축입니다. 여기에 사이버 렉카, 가짜 뉴스, 학폭까지 엮이다 보니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갑니다. 개연성이 다소 느슨해지는 부분이 생기는 건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흥행 실패작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국 영화 시장에서 100억 원 이상 제작비를 투입한 작품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사례는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출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KOBIS). 베테랑2가 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호불호를 떠나 시장에서 살아남은 작품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적제재라는 딜레마, 이 영화가 건드리는 지점
제가 이 영화를 두 번 본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엔 액션을 보러 갔고, 두 번째엔 서도철이 왜 그 선을 지키려 했는지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 있냐?"라는 대사는 극장에서 들었을 때보다 집에서 더 또렷하게 박혔습니다. 거실이 조용해서인지, 아니면 마음의 준비가 됐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군중 심리(群衆心理)란 개인이 집단 속에 섞였을 때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에 휩쓸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해치에 열광하는 여론 장면이 그것을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증폭되는 분노와 지지, 그리고 그 속에서 실제 공권력이 얼마나 무력해 보이는지를 영화는 꽤 냉정하게 묘사합니다. 이 부분만큼은 1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류승완 감독의 시선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다만 이야기가 여러 사회 이슈를 동시에 품으려다 보니, 각각의 무게감이 고르게 전달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빌런의 서사를 깊게 파지 않은 선택은 어떻게 보면 영리한 판단이었습니다. 빌런의 배경을 자세히 풀어냈다면 오히려 클리셰(cliché), 즉 진부한 공식 패턴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긴장감을 유지한 셈인데, 이건 저도 두 번째 시청에서야 납득이 됐습니다.
황정민과 정해인의 캐릭터 대비는 이 영화에서 가장 분명한 강점입니다. 서도철은 지쳤지만 원칙을 붙잡고, 박선우는 맑아 보이지만 그 이면이 서늘합니다. 이 두 인물이 같은 프레임 안에서 충돌할 때, 영화가 던지려는 질문이 가장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이 작품이 다루는 주요 사회적 이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적 제재 — 공권력 밖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폭력적 응징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 사이버 렉카 — 조회수와 자극을 위해 사건을 소비하고 확산시키는 디지털 문화의 문제
- 가짜 뉴스 — 검증 없이 퍼지는 정보가 여론과 수사에 미치는 영향
- 학교폭력 —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남는 장기적 상처와 사회적 책임
네 가지가 하나의 이야기 안에 동시에 들어가 있으니 산만하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이 이슈들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엉켜서 사건을 키웁니다. 그 혼란스러움 자체가 감독의 의도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확신이 서진 않지만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미장센이 살린 장면들, 집에서 더 잘 보인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프레임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공간 구성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영화 연출 방식을 뜻합니다. 베테랑2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장센은 거울과 화면의 대비입니다. 박선우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서도철은 화면을 통해 상황을 파악합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두 인물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인데, 극장에서는 그냥 지나쳤다가 집에서 다시 보며 이 장면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촬영감독 최영환이 구현한 빗속 야간 추격 시퀀스도 집에서 봐야 제 맛이 납니다. 네온사인이 젖은 도로에 반사되는 명암 대비,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카메라 각도, 몸이 미끄러질 때의 촉감이 화면에 전달되는 방식이 꽤 정교합니다. 극장의 큰 화면보다 오히려 조명을 낮춘 거실에서 소리에 집중하며 보는 편이 더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이건 순전히 제 경험입니다만, 킬링타임(killing time)용 영화, 그러니까 별 기대 없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틀어두는 영화들보다 한 단계 밀도가 높은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음악감독 장기하가 맡은 스코어(score)란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된 배경음악 전체를 가리킵니다. 기존 느와르 장르의 무거운 음악 공식을 따르지 않고, 리듬감 있는 비트로 추격전의 속도를 조율한 방식이 이색적이었습니다. 어두운 터널 안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 스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다시 한번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국내 영화 음악 전반의 경향에 대해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정기적으로 자료를 공개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아카데미 KAFA).
베테랑2는 전편을 좋아할수록 처음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낯섦이 실패가 아니라 의도된 방향 전환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면, 다시 보이는 장면들이 생깁니다. 넷플릭스로 가볍게 틀었다가 생각보다 진지하게 보게 되는 영화를 원하신다면, 조명을 낮추고 소리를 키운 다음 처음 15분만 버텨보시길 권합니다. 그 뒤는 알아서 빠져들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