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아이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간식을 잔뜩 펼쳐두고 <듄: 파트 2>를 틀었습니다. 전편을 워낙 인상 깊게 봤던 터라 기대치가 높았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대를 넘어섰다기보다,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영화였습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묵직해졌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무게가 쉽게 걷히지 않았습니다.
스케일: 거실을 아라키스로 만든 90분
처음 몇 분 만에 화면이 바뀌는 순간, 옆에 앉은 아이가 조용해졌습니다. 광활한 사막 행성 아라키스(Arrakis)의 모래 언덕이 펼쳐지고, 한스 짐머의 음악이 가슴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맥스(IMAX) 포맷이란 기존 35mm 필름보다 열 배 이상 넓은 화각을 구현하는 촬영 방식으로, 쉽게 말해 화면이 시야 전체를 감싸 안는 느낌을 줍니다. 집 TV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압도감이 상당했으니, 극장에서 봤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폴이 샤이 훌루드(Shai-Hulud), 즉 거대한 모래벌레를 처음으로 길들이는 장면에서 아이가 주먹을 꽉 쥐며 "와, 저거 어떻게 올라탄 거야!"라고 외쳤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장면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었습니다. 폴이 프레멘(Fremen) 부족에게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는 통과의례이자, 서사 전체의 전환점이었습니다. 프레멘이란 아라키스 사막에서 대대로 생존해 온 원주민 부족으로,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고유한 문화와 신앙 체계를 지켜온 집단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전편에서 세계관의 뼈대를 촘촘하게 세우는 데 집중했다면, 파트 2에서는 그 뼈대 위에 살을 붙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파트 1이 지루하다고 느꼈던 분들도 있을 텐데, 저는 파트 1이 반드시 필요한 기초 공사였다고 생각합니다. 기초가 단단해야 이 파트 2의 서사가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인물 클로즈업이 전편보다 확연히 늘었다는 점도 느꼈는데, 이는 인물 내면의 감정선이 이번 편의 핵심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메시아주의: 영웅 서사를 정면으로 뒤집다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제가 처음에 기대했던 건 '선택받은 자가 적을 무찌르고 승리한다'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였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폴이 '리산 알 가입(Lisan al-Gaib)', 즉 예언 속 구원자로 추앙받으면서 오히려 이야기는 점점 더 서늘해졌습니다. 리산 알 가입이란 아라키스의 예언 전통에서 내려오는 구원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베네 게세리트(Bene Gesserit)라는 비밀 조직이 수백 년에 걸쳐 인위적으로 퍼뜨린 신화입니다.
베네 게세리트란 초인적인 신체 능력과 정신력을 지닌 여성 집단으로, 은밀하게 정치와 종교를 조종해 온 세력입니다. 쉽게 말해 수백 년 앞을 내다보며 체스판을 놓는 존재들인데, 폴의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도 이 조직의 일원입니다. 이 지점이 영화에서 가장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폴이 믿고 따르는 예언 자체가 처음부터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관객은 그의 각성을 단순한 카타르시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집니다.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는 이 작품을 통해 "맹목적으로 따르는 지도자는 인류에게 구원이 아닌 재앙이 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Encyclopaedia Britannica)에 따르면, 허버트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이후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대중의 맹목적 열망을 목격하며 《듄》을 집필했다고 밝혔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그 의도를 충실하게, 그리고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구현해 낸 것입니다.
파트 2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코넨(Harkonnen) 가문의 모행성 기에디 프라임(Giedi Prime)에서 펼쳐지는 글래디에이터 아레나 시퀀스. 적외선 촬영으로 구현된 흑백 화면이 인물들의 잔혹함을 오히려 더 날카롭게 전달합니다.
- 폴과 페이드 로타(Feyd-Rautha)의 단검 결투. 화려한 시각 효과 없이 배우들의 숨소리와 신체 연기만으로 긴장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장면입니다.
- 챠니(Chani)가 프레멘 군중 속에서 홀로 폴을 바라보는 마지막 시퀀스. 젠데이아의 표정 하나에 이 영화의 모든 주제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챠니의 시선이 제게는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모든 프레멘이 리산 알 가입을 외칠 때, 그녀만이 홀로 뒤돌아 걷습니다. 군중의 열기와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한 사람. 그 장면을 보면서 아이에게 "저 사람은 왜 혼자 반대로 가는 걸까?"라고 물었고, 아이는 한참 생각하다가 "다들 믿으니까 자기도 믿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라고 답했습니다. 그 순간이 이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본 것에 가장 감사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 카리스마와 불안이 공존하는 연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배우 한 명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가 이 정도로 달라질 수 있다는 걸 티모시 샬라메를 보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그를 그토록 고집했던 이유가 화면에서 바로 납득이 되었습니다. 마른 체구에서 나오는 서늘한 카리스마,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실리는 발성과 딕션(diction), 그리고 침묵하는 순간에도 눈빛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능력이 폴이라는 캐릭터를 완성시켰습니다.
딕션(diction)이란 배우가 대사를 얼마나 명확하고 의도적으로 전달하느냐를 뜻하는 연기 용어입니다. 단순히 발음이 정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감정과 맥락이 언어 안에 얼마나 정밀하게 담겨 있는지를 보는 기준입니다. 티모시의 딕션은 폴이 점점 메시아로 변해가는 과정을 목소리의 결로 표현해 냈습니다. 전반부의 불확실함과 후반부의 냉정함이 같은 배우의 목소리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2019년 작품 <더 킹: 헨리 5세>를 봤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마른 체구에서 나오는 왕의 카리스마와 전쟁을 앞둔 인물의 불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파트 2에서는 그 연기력이 한 층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오스틴 버틀러가 연기한 페이드 로타도 짧은 등장 시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광기를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방식이, 폴의 차갑고 절제된 카리스마와 극명하게 대비되며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했습니다. 버라이어티(Variety)도 파트 2를 리뷰하며 "샬라메가 단순한 영웅을 넘어 비극적 인물로서의 폴을 완성시켰다"고 평가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영화에서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배치, 세트 디자인 등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개념입니다. 드니 빌뇌브는 이번 작품에서 미장센을 통해 폴의 감정 변화를 대사 없이 전달하는 장면들을 여럿 만들어 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장면을 왜 이 각도에서 찍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고, 그게 이 영화를 한 번으로 끝내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결국 <듄: 파트 2>는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 찬 블록버스터이면서, 동시에 권력과 신화, 자유의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아이와 함께 보고 "진정한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를 이야기했던 그 시간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가능하다면 반드시 극장에서, 아이맥스로 보시길 권합니다. 이런 작품이야말로 극장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합니다. 파트 3까지 계획되어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서사가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와 설렘이 동시에 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