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분짜리 영화를 보면서 단 한 번도 시계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주말 저녁, 거실 불을 낮추고 가족이 모여 앉아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어느 순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더군요. 솔직히 예고편만 봤을 땐 "또 우주 배경 스케일 자랑 영화 아닌가" 싶었습니다. 첫 장면의 아라키스 사막이 화면을 채우는 순간, 그 편견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출연진: 한 화면에 이 얼굴들이 다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영화 듄1의 캐스팅 명단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제가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작, 제이슨 모모아, 젠데이아, 스텔란 스카스가드, 데이브 바티스타, 하비에르 바르뎀. 이 이름들이 전부 한 작품에 들어가 있습니다. 각자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하던 배우들이 이 영화 안에서는 치열하게 자기 역할을 소화합니다.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이란 특정 주인공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고, 여러 배우가 고르게 서사를 이끌어가는 방식입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이 전략이 흥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배우들끼리 스크린 타임을 나눠 가지다 보면 중심 서사가 흐릿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듄1은 달랐습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레베카 퍼거슨의 레이디 제시카였습니다. 아들을 지키려는 어머니로서의 두려움과 베네 게세리트(Bene Gesserit) 수도회의 훈련을 받은 전사로서의 냉정함이 클로즈업 한 컷에서 동시에 읽혔습니다.
베네 게세리트란 듄 세계관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인류의 유전자와 종교를 은밀하게 조작해온 여성 조직입니다. 단순한 악당도, 단순한 조력자도 아닌 이 집단의 복잡한 위치를 퍼거슨이 눈빛 하나로 표현해내더군요. 155분이라는 런닝타임이 짧게 느껴진 데는 배우들의 이 밀도 높은 연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폴 아트레이데스 역의 티모시 샬라메는 제가 처음엔 좀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선택받은 자"라는 메시아적 서사는 배우가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금세 공허하게 들리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샬라메는 정반대로 접근했습니다. 운명 앞에서 두려워하고, 확신이 없고, 흔들리는 폴을 연기했습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캐릭터를 살아있게 만들었습니다.
미장센: 컴퓨터 그래픽보다 더 비현실적인 실제 사막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 즉 인물의 위치, 조명, 세트, 색감 등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연출 기법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 영화에서 과잉 CG 대신 실제 로케이션 촬영을 선택했습니다.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과 아랍에에미리트의 리와 사막에서 직접 카메라를 돌렸고, 그 선택이 스크린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거실 65인치 TV로 봤는데도 그 스케일에 압도됐습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우주선이 아라키스 상공에 진입하는 장면, 모래 위에 점처럼 선 인물들 위로 거대한 오니솝터(ornithopter)가 날개를 펼치는 장면. 오니솝터란 잠자리 날개 구조에서 착안한 항공기 형태로, 영화의 고증팀이 수개월간 실제 비행 역학을 연구해 설계한 결과물입니다. 제 아이는 이 장면에서 화면 앞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저거 진짜야?"라고 물었습니다.
촬영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핵심 전략은 인간과 환경의 스케일 대비였습니다. 광활한 사막 안에서 인물을 극단적으로 작게 담거나, 반대로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감정의 밀도를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이 두 극단을 오가는 리듬이 155분 동안 관객의 시선을 잡아당깁니다. 실제로 그레이그 프레이저는 이 촬영 방식에 대해 인터뷰에서 상세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출처: Variety).
샤이 훌루드(Shai-Hulud), 즉 아라키스의 거대 모래벌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샤이 훌루드란 프레멘 족이 신성시하는 수백 미터 길이의 모래벌레로, 아라키스 생태계의 핵심이자 스파이스(spice) 생산의 근원입니다. 스파이스란 이 우주에서 항성 간 항법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물질로, 영화 전체 권력 갈등의 핵심 자원입니다. 이 생물이 화면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 저는 리모컨을 내려놓고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OST: 한스 짐머가 이번엔 오케스트라를 버렸습니다
한스 짐머의 필모그래피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 나이트. 그런데 듄1 OST는 그 어떤 작품과도 다릅니다. 처음 들었을 때 "이게 영화 음악이 맞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짐머는 이 작업을 위해 기존의 서양식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났습니다. 오케스트레이션이란 다양한 악기를 조합해 하나의 사운드를 설계하는 작업입니다. 그는 기존에 없는 악기를 직접 제작했고, 여성 성악가들의 변형된 보컬, 대나무 악기, 금속 타악기, 전자 변조음을 뒤섞었습니다. 결과물은 서양 음악도 동양 음악도 아닌, 아라키스라는 가상 행성에서만 존재할 법한 소리입니다.
영화 듄1 사운드트랙의 제작 과정과 악기 구성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그래미어워즈 공식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Grammy). 짐머는 이 음악이 "이미 알고 있는 지구의 어떤 문화와도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아래 작업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래는 제가 듄1 감상 후 OST를 따로 정리해 반복 재생한 트랙들입니다.
- Ripples in the Sand - 폴이 처음 사막에 발을 딛는 장면과 맞물리는 곡으로, 저음 보컬의 진동이 내장까지 울립니다.
- Paul's Dream - 예지몽 시퀀스에서 흐르는 곡입니다. 불안과 경이가 동시에 느껴지는 이상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 Leaving Caladan - 고향을 떠나는 장면의 배경음으로, 슬픔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공간의 느낌으로만 표현합니다.
- My Road Leads Into The Desert - 엔딩으로 이어지는 트랙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볼 때는 사운드바나 헤드폰 사용을 강력히 권합니다. 이 음악은 저음 대역이 충분히 재생되지 않으면 절반도 전달이 안 됩니다. 극장 아이맥스 포맷으로 듄2를 봤을 때, 사운드의 물리적인 압박감이 듄1 집 관람과 비교해 차원이 달랐다는 걸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 차이가 너무 커서, 듄1을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두 편을 다 보고 나서 개인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듄2가 전투 스펙터클 면에서는 앞서지만, 세계관의 밀도와 여운의 깊이는 듄1 쪽이 더 길게 남았습니다. 듄1은 현재 시리즈온, 웨이브, 쿠팡플레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듄 파트3(듄3)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집필 중이며 2025년 개봉을 목표로 알려져 있습니다. 듄3가 개봉하기 전에, 시리즈를 아직 시작하지 않으셨다면 듄1부터 순서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 30분의 낯선 세계관 설명만 넘기고 나면, 이후는 멈추기 어려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