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별다른 기대 없이 넷플릭스를 켰다가 오프닝 첫 장면에서 소파에서 등을 세우게 된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위대한 쇼맨>을 처음 틀었을 때, 화면이 밝아지기도 전에 음악이 먼저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실존 인물의 삶을 뮤지컬로 풀어낸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 영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영화의 탄생 배경
19세기 미국에서 '근대적 서커스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hineas Taylor Barnum)의 실제 삶이 이 영화의 원천입니다. 바넘은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대중 엔터테인먼트라는 개념 자체를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영화가 픽션적 각색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실화 모티브가 주는 묵직한 무게감은 순수 창작 뮤지컬과는 확실히 다른 감동을 전달합니다.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데뷔작에서 이 정도의 스펙터클(spectacle), 즉 시각적·청각적 압도감을 구현해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스펙터클이란 관객을 완전히 몰입시키는 거대한 시각적 연출을 뜻하는데, 이 작품은 서커스 링이라는 원형 공간을 영리하게 활용해 카메라가 360도로 숨 막히게 돌아가는 장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온 가족과 함께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아이가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기도 전에 "아빠, 이거 공연 보러 가도 돼요?"라고 물었습니다. 스크린을 통해서도 실제 공연장의 열기가 전달될 만큼 연출의 완성도가 높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개봉 이후 국내에서도 2020년 5월 재개봉하며 다시 한 번 뜨거운 반응을 얻었는데, 재개봉 흥행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가 '한 번 보고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는 증거겠지요.
OST와 연출이 만들어낸 감동의 구조
이 영화를 논할 때 사운드트랙(Soundtrack)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운드트랙이란 영화의 감정선을 음악으로 뒷받침하는 음악 전체를 뜻하는데, <위대한 쇼맨>의 OST는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에 오를 만큼 영화 그 이상의 생명력을 가졌습니다. 작사·작곡을 맡은 파섹 앤 폴(Pasek & Paul)은 <라라랜드>와 <디어 에반 핸슨>으로 이미 검증된 팀입니다. 이들은 19세기 배경의 사극 위에 현대적인 팝·록 사운드를 얹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는데, 어색하기는커녕 오히려 세대를 초월하는 공감대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This Is Me' 시퀀스는 저도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세상의 편견에 눌려 숨어 지내던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이게 바로 나야!"라고 포효하는 장면인데, 옆에서 눈을 반짝이던 아이의 손을 꼭 쥐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이 곡은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Golden Globe Awards)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는데, 그 수상이 전혀 과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라라랜드 작사 팀이 이 영화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대신 말해주는 '서사 도구'로 쓰인다는 점이 더 잘 보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들의 구성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젠데이아와 잭 에프론이 공중 로프에 매달려 연기하는 'Rewrite the Stars' 장면은 그 자체로 완벽한 한 편의 무용극입니다. 이를 두고 "뮤지컬 문법에서 벗어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경계 허물기가 이 영화만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점 데이터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실 관람객 평점은 9.29점으로 높은 반면, 영화 전문 비평 매체인 Rotten Tomatoes에서는 신선도 57%로 평단과 대중 사이의 온도 차가 꽤 크게 나타납니다. 비평가들은 역사적 사실의 미화나 서사의 단순함을 지적하고, 실제 바넘이 소외된 이들을 착취한 면이 있다는 점도 문제로 봅니다. 이런 시각도 충분히 타당합니다. 그러나 한 편의 뮤지컬 영화가 전달해야 할 감동과 메시지라는 기준에서 보면, 이 작품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봅니다.
이 영화가 달성한 주요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주제가상 수상 ('This Is Me')
- 제44회 새턴 어워즈(Saturn Awards) 최우수 액션·모험상 수상
- OST 앨범, 2018년 전 세계 판매량 1위 기록
- 국내 실 관람객 평점 9.29점, 네티즌 평점 9.45점
- 2020년 재개봉으로 다시 한 번 흥행 성공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영화 속 명대사 중 "모두가 당신을 사랑할 필요가 없어. 몇 명의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돼"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두 번째 볼 때 이 문장이 제 경험상 가장 깊이 박혔습니다. 살다 보면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생기는데, 이 한 마디가 그 욕구를 조용히 내려놓게 해주더라고요.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예술 작품을 통해 억눌린 감정이 정화되고 해소되는 경험을 뜻하는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제시한 개념입니다. <위대한 쇼맨>이 반복 관람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바로 이 카타르시스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고 나면 뭔가 씻겨 내려간 듯한 기분이 드는 영화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인생은 고달픈 법이지"라는 대사 역시 인상적입니다. 저는 이 대사를 들으면서, 꿈을 가진다는 것이 단순히 원하는 것을 바라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비평 관점에서 이 작품의 서사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 낙관성이 오히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처방일 수 있다고 봅니다.
영화의 뮤지컬적 특성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서 제공하는 장르별 흥행 분석 자료도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뮤지컬 영화 장르가 한국 시장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위대한 쇼맨>을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 "가장 찬란한 쇼는 스크린 밖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역사적 미화 논란이 있고, 평단의 평가가 엇갈리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경험한 그 주말 저녁의 감동은 어떤 별점으로도 대체되지 않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넷플릭스에서 바로 찾아보시길 권하고 싶고, 한 번 보셨다면 OST만 먼저 틀어보세요. 음악이 다시 그 무대로 데려다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