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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용의 출현 (무대인사, 학익진, 한산 리덕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개봉 첫 주 무대인사 좌석이 순식간에 매진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도 무더운 여름날 가족들과 함께 극장을 찾았는데, 상영관 안의 공기가 처음부터 달랐습니다. 역사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지만, 이 작품은 극장을 나온 후에도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무대인사, 어렵게 잡은 자리의 가치

무대인사 티켓은 요즘 말로 하면 '취켓팅'의 영역입니다. 취켓팅이란 취소표를 재빠르게 낚아채는 행위를 뜻하는데, 인기 공연이나 영화 무대인사처럼 경쟁이 치열한 예매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개봉 첫 주 주말 무대인사 좌석을 운 좋게 잡은 분들의 후기를 보면, B열 구석 자리에서도 배우들의 재치 있는 멘트에 웃음이 터졌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는 무대인사 자리는 아니었지만, 개봉 초반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극장을 찾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역사 영화 특성상 중장년 관객이 주를 이룰 거라 생각했는데,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정말 다양했거든요. 그 자체로 이 영화가 얼마나 넓은 층을 끌어당겼는지 체감이 됐습니다.

무대인사를 직접 본 관객들의 반응 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서로를 웃기는 장면에서 현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의 묵직한 무게감과 달리, 현장은 꽤 유쾌했다고 하더군요. 그 온도 차이가 오히려 영화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학익진, 바다 위에서 펼쳐진 전술의 완성

영화의 핵심은 단연 학익진(鶴翼陣)입니다. 학익진이란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처럼 함선을 반원형으로 배치해 적을 포위하는 전술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적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양쪽 날개가 감싸 안는 형태로 전장을 장악하는 방식입니다. 1592년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 전술을 완성시켜 일본 수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학익진을 단순히 화면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이 전술이 그 장소에서 효과적이었는지 설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 장소의 지형을 먼저 파악하고, 양쪽 날개에는 날렵한 장수를 배치했습니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 전술의 완성이라는 생각이 스크린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이 장면에서 박해일 배우의 눈빛이 정말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냉정해서 더 몰입이 됐습니다.

VFX(시각효과, Visual Effects)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VFX란 디지털 기술로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뜻하는데, 이 영화의 해전 시퀀스에서 그 위력이 제대로 발휘됩니다. 거대한 판옥선(板屋船)들이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갖추며 학익진을 완성해 나가는 장면은, 단순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퍼즐 같았습니다. 판옥선이란 조선 시대 주력 전함으로, 갑판 위에 상부 구조물을 얹어 병사들이 안전하게 싸울 수 있도록 설계된 배입니다.

거북선이 등장하는 순간은 또 별개입니다. 영화의 부제가 '용의 출현'인 이유를 그 장면에서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주변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는 어린 관객의 이야기가 전혀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역사연구회 등 역사 관련 학술 단체에서도 이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꾸준히 조명해 왔습니다. 한산도 대첩은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꾼 결정적 전투로 평가받으며, 이에 대한 자세한 배경은 문화콘텐츠닷컴(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해일의 이순신, 그리고 "의와 불의의 싸움"

영화 명량(2014)에서 최민식 배우의 이순신이 뜨겁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었다면, 한산에서 박해일 배우의 이순신은 정반대의 결로 다가옵니다. 차갑고 침착하며, 어딘가 선비의 기운이 느껴지는 지장(智將)입니다. 지장이란 무예보다 뛰어난 지략과 판단력으로 전쟁을 이끄는 장수를 뜻합니다. 두 배우 모두 이순신을 연기했지만, 전혀 다른 인물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캐스팅 자체가 하나의 해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대사는 항왜 준사와 이순신 장군의 짧은 대화입니다. 준사가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장군은 "이 전쟁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라고 답합니다. 항왜(降倭)란 조선 편에 귀순한 일본인 병사를 뜻하는데, 준사는 이 영화에서 그 존재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이 대사가 영화 안에서 충분한 설명 없이 등장하는 것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처음 극장을 나왔을 때 그 장면이 조금 급하게 처리됐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여백 때문에 극장 밖에서도 그 의미를 계속 곱씹게 됐습니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닌,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정의가 준사라는 인물에게 얼마나 강렬하게 꽂혔을지, 생각할수록 묵직해지는 대사였습니다.

한산 리덕스에서는 이 장면 뒤에 준사의 대사가 추가됩니다. 이순신 장군은 자기 병사를 살리기 위해 앞서 나와 싸웠지만, 준사의 장수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병사들을 방패막이로 썼다는 내용입니다. 그 대비가 추가되고 나서야 준사가 왜 '의'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뛰어나가는지 비로소 완전히 이해됩니다. 본편도 좋았지만, 제 경험상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리덕스를 따로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한산 리덕스, 21분이 만든 차이

한산 리덕스(Redux)는 2022년 11월 16일 극장에서 개봉하고, 같은 해 12월 2일 넷플릭스에 공개됐습니다. 리덕스(Redux)란 원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재편집' 혹은 '복원된'이라는 뜻입니다. 영화 분야에서는 감독이 극장 개봉 버전보다 더 많은 장면을 포함시켜 재출시한 버전을 가리킵니다.

러닝타임은 본편 대비 약 21분 늘어났습니다. 단순히 장면이 추가된 게 아니라 첫 장면부터 편집 자체가 달라졌고,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도 새로 들어갔습니다. 해전 시퀀스도 일부 보강됐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맨 마지막에는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를 암시하는 짧은 장면도 등장합니다.

본편과 리덕스를 비교해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첫 장면부터 편집 구조가 달라 스토리 진입 방식이 다릅니다.
  2. 항왜 준사 관련 장면에 대사가 추가되어 인물의 선택에 설득력이 생깁니다.
  3. 이순신 장군 어머니 장면이 추가되어 인물의 인간적인 면이 보완됩니다.
  4. 해전 시퀀스가 일부 보강되어 스펙터클이 한층 강화됩니다.
  5. 노량: 죽음의 바다로 이어지는 복선이 마지막에 삽입됩니다.

둘 다 볼 수 있다면 본편을 먼저 보고 리덕스로 마무리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리덕스 한 편만으로도 이 영화의 핵심은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김한민 감독의 3부작 연출 방식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실에서 관련 기획 자료를 참고해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족들과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가 꽤 길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술보다 오히려 '의'라는 단어 하나가 계속 화제가 됐습니다. 김한민 감독의 3부작은 영웅을 신화화하지 않고, 그 사람의 선택과 가치관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관객을 움직입니다.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3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이 시리즈가 하려는 말의 전체 그림이 보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