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를 보면서 무서운 건 괴물도, 폭발도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2016년 개봉한 김성훈 감독의 영화 '터널'을 극장에서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터널 하나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는 특수효과나 괴물이 없어도 사람을 이렇게까지 서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 작품입니다.
폐쇄공포증을 스크린으로 옮기다
재난 영화라고 하면 흔히 거대한 해일이나 도시를 집어삼키는 화염 같은 장면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런 스펙터클을 기대하며 극장 문을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선택한 무대는 무너진 터널 안,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가는 좁디좁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카메라 앵글, 조명, 소품 배치 등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연출하는 것을 뜻합니다. 김성훈 감독은 이 미장센을 철저히 '제한'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흔들리는 헤드라이트, 점점 줄어드는 생수, 배터리 잔량 78%에서 시작하는 휴대폰. 이 소품들이 그대로 주인공 정수(하정우 분)의 심리 상태를 대변합니다.
평소에 운전을 자주 하는 편이라 터널 진입 장면부터 이상하게 몸이 긴장되더라고요. 굉음과 함께 콘크리트가 쏟아져 내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폐쇄공포증(claustrophobia), 즉 밀폐된 공간에서 극심한 불안과 공황을 느끼는 심리적 반응을 이 영화만큼 효과적으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단순히 무섭게 만드는 것과, 관객이 그 공간 안에 함께 갇힌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이 영화는 후자에 성공했습니다. 상영 내내 상영관 공기까지 유독 무겁게 느껴졌던 건 제 착각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정우라는 배우가 해낸 원맨쇼
이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하정우입니다. 하나의 배우가 제한된 공간에서 영화 대부분을 끌고 나가는 구조는 자칫하면 지루함이라는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1인 생존극이 실패하는 이유 대부분은 배우의 무게감이 공간의 무게감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정우는 달랐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홀로 식사를 하거나, 구조견과 강아지 사료를 나눠 먹는 장면에서 그의 능청스럽고도 인간적인 연기가 빛납니다. 이를 두고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적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블랙 코미디란 죽음이나 재난 같은 비극적 상황을 역설적으로 유머의 소재로 삼아, 오히려 그 상황의 비참함을 더 날카롭게 부각시키는 기법을 뜻합니다. 이 기법이 극의 완급 조절에 절묘하게 작동하면서, 관객이 극도의 긴장에서 잠깐 숨을 쉬고, 다시 긴장하는 사이클을 반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생존 드라마에서 단순히 '살아남으려고 버티는 인물'이 아니라, 웃기고 안쓰럽고 인간적인 사람을 만들어 낸 것. 그것이 하정우라는 배우의 진짜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건 시나리오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배우가 그 인물을 온몸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는 결과입니다.
사회비판,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말
영화 '터널'을 단순한 생존 스릴러로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서늘한 장면들은 터널 안이 아니라 터널 밖에서 벌어집니다.
구조 현장에 카메라를 끌고 와 지지율을 챙기는 정치인, 생존자의 이름보다 조회수가 더 중요한 언론, 그리고 구조 작업이 길어지자 슬그머니 여론이 바뀌기 시작하는 모습. 이 장면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품게 된 뼈아픈 자기 성찰과 맞닿아 있습니다. 안전불감증(安全不感症)이란 익숙함으로 인해 위험 상황에 둔감해지는 사회적 현상을 뜻하는 말로, 영화는 부실 공사로 무너진 터널을 통해 이 개념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터널 중 준공 후 30년 이상 노후화된 시설의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 안전 등급 미흡 판정을 받은 터널도 다수 존재합니다. (출처: 국토교통부) 영화 속 상황이 완전한 허구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분)의 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입니다. 그의 갈등과 선택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얼마짜리로 계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가.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그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영화가 전달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안전불감증이 낳은 부실 공사가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줍니다.
- 위기 상황에서 정치와 언론이 개인의 생명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구조적 문제를 폭로합니다.
- 한 사람의 생존을 두고 여론이 분열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 존엄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 구조 현장 책임자의 인간적 고뇌를 통해 최소한의 사회적 양심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영화 '터널'을 단순히 잘 만든 오락 영화로 보는 분들도 있고, 저처럼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불편한 여운을 경험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올바른 감상법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무심코 보기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내러티브(narrative), 즉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에서 이 영화는 터널 안과 밖을 끊임없이 교차시키는 편집을 선택합니다. 이 교차 편집은 단순히 긴장감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개인의 사투와 사회의 민낯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구조입니다. 그 구조 덕분에 관객은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속한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터널'은 2016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수 712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그 숫자가 의미하는 건, 이 영화가 건드린 감각이 한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보고 나서 가장 강하게 남은 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탁 트인 하늘을 보러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바로 이 영화가 성공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상 속 공간 하나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드는 영화, 그게 이 작품이 남긴 진짜 선물입니다.
아직 '터널'을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스마트폰 대신 조금 큰 화면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폐쇄공간의 밀도는 화면 크기에 비례하거든요. 그리고 다 보고 나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십시오. 그 느낌이 이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