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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퀸, 라이브에이드, 프레디머큐리)


영화관 불이 꺼지고 첫 피아노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저도 모르게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앞으로 몸을 기울였습니다. 퀸(Queen)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마주한 그날의 감각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음악 바이오픽(Biopic)이란 실존 음악가의 생애를 재구성한 전기 영화 장르를 뜻하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장르의 기준점을 새로 쓴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퀸, 그리고 공항 수화물 운반원이었던 한 청년

솔직히 처음엔 "퀸 영화라면 이미 노래가 다 아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We Will Rock You, Bohemian Rhapsody, We Are the Champions. 귀에 익은 곡들이라 새로울 게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영화는 공항에서 수화물을 나르던 청년 파루크 불사라, 훗날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밴드에 합류하는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그가 처음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드러머 로저 테일러(Roger Taylor)와 만나던 순간의 생기는 꾸밈이 없어서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베이시스트 존 디콘(John Deacon)까지 합류하며 네 사람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밴드 케미스트리(band chemistry), 즉 멤버들 사이에 형성되는 음악적·인간적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연스럽게 실감하게 됩니다.

프레디의 영원한 뮤즈이자 단짝으로 등장하는 메리 오스틴(Mary Austin)과의 관계도 영화에서 꽤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명곡 Love of My Life가 그녀를 위해 쓰인 노래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사랑과 이별을 거치고 나서도 서로의 곁을 지키는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애잔했습니다. 프레디는 사후 저작권의 상당 부분을 그녀에게 남겼다고 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 속 두 사람의 장면들을 되새기면 감정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녹음 스튜디오 장면에서 꽃미남으로 유명한 로저 테일러가 보여주는 자존심 강한 리액션은 영화 중반부의 숨통을 트여주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극장에서 그 장면에 혼자 피식 웃었다가 주변 사람들 눈치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라이브에이드, 20분이 전부였지만 전설이 된 무대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은 단연 1985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에이드(Live Aid) 공연 시퀀스입니다. 라이브에이드란 에티오피아 기근 구호를 위해 기획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선 록 콘서트로, 위성 중계를 통해 전 세계 약 19억 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BBC Culture). 퀸은 그날 단 20분의 무대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고, 영화는 그 20분을 거의 실시간으로 재현합니다.

그때 느낀 건, 이게 영화 안의 공연인지 실제 공연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이상한 감각이었습니다. 라미 말렉(Rami Malek)이 "에오~" 하며 관객과 호흡을 맞추는 순간, 극장 안의 공기가 실제로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발이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고, 좌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습니다.

라미 말렉은 이 역할을 위해 무브먼트 코치(movement coach), 즉 신체 동작과 제스처를 전문적으로 훈련하는 코치에게 장기간 지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마이크 스탠드를 반쯤 잘라 쥐는 방식, 무대 위를 누비는 걸음걸이,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프레디를 철저히 분석한 결과물이 바로 그 라이브에이드 시퀀스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치아 보철 분장을 하고도 그토록 자연스럽게 발음을 소화해낸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감탄스럽습니다.

사운드 디자인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매우 정교합니다.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이란 영화에서 음향 효과, 음악, 대사의 균형을 설계하는 기술적 작업을 뜻합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실제 보컬과 커버 가수 마크 마텔(Marc Martel)의 목소리, 라미 말렉의 목소리를 레이어드(layered) 방식으로 블렌딩했는데, 이 레이어드 기법이란 여러 음원을 겹쳐 하나의 자연스러운 소리로 만드는 기술을 말합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정밀했는지, 극장의 스피커로 들을 때 "아, 저 목소리는 진짜 프레디다"라는 착각이 수차례 들었습니다.

라이브에이드 공연 이후 영화에서 특히 눈길을 끈 포인트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신발부터 의상까지 실제 공연 당시 프레디의 스타일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실제 영상과 비교해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2. 카메라 크레인 워킹(crane walking), 즉 카메라를 높이 올려 무대 전체를 역동적으로 담는 촬영 기법을 적극 활용해 관객의 규모감을 극대화했습니다.
  3. 실제 라이브에이드 영상의 조회수는 영화 개봉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으며, 30년이 넘은 공연에 새로운 세대 팬덤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사람, 음악 뒤에 있던 이야기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마음이 무거워진 부분은 프레디의 외로움이었습니다. 연인도, 부도, 명예도 모두 손에 쥔 사람이 어째서 그토록 쓸쓸해 보이는가. 직접 겪어보니 그 감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서서히 쌓여서, 마지막 라이브에이드 장면에서 한꺼번에 터지는 구조였습니다.

프레디는 에이즈(AIDS)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공연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에이즈(AIDS)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면역 체계를 파괴해 발생하는 증후군으로, 1980년대에는 치료법이 없어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출처: WHO). 그는 결국 에이즈 합병증인 폐렴으로 45세에 생을 마감했는데, 마지막 뮤직비디오에서 두꺼운 분장으로 웃음을 유지한 것이 팬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배려였다는 사실은 알면 알수록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영화가 천재 음악가의 복잡한 내면과 밴드 내부 갈등을 다소 매끄럽게 정형화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저도 그 아쉬움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프레디의 정체성 혼란이나 멤버들 사이의 균열이 조금 더 날카롭게 묘사되었다면 인물의 입체감이 더 깊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목표로 삼은 것이 비극의 해부보다 음악의 힘에 대한 헌사에 가깝다는 걸 관람 내내 느꼈습니다. 그 방향성만큼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러닝타임 120분 동안 귀에 걸리는 명곡이 계속 이어지는데, 제 경험상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오래 남는 건 타이틀곡 Bohemian Rhapsody입니다. 피아노 전주 몇 음만 들어도 그날 극장의 공기가 떠오를 정도였으니, 이 영화가 음악을 어떻게 써먹었는지 짐작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제목을 들으면 "마마(MAMA)~" 하는 그 노래 맞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맞습니다. Bohemian Rhapsody 안에 그 구간이 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악이 어떻게 사람의 외로움과 결핍을 채우는지, 그리고 무대 위의 찰나가 얼마나 영원할 수 있는지를 120분으로 압축한 영화입니다. 퀸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완벽한 입문이 될 것이고, 오래전부터 퀸을 들어왔던 분이라면 라이브에이드 시퀀스에서 예상 밖의 감정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보고 난 후 퀸의 실제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적극 추천합니다. 영화와 실제 공연을 교차해서 보면, 라미 말렉이 얼마나 정밀하게 프레디를 연구했는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