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애니메이션 역사상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작품이 <코코>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그 정도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고? 그런데 직접 보고 나서 그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주황빛 마리골드 꽃길을 보는 순간, 온몸에 기분 좋은 전율이 흘렀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 어디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배경이 되는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Día de los Muertos)'를 알아야 합니다.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란 매년 11월 1일과 2일에 열리는 멕시코의 전통 축제로, 죽은 조상들의 영혼이 이승으로 돌아온다고 믿는 날입니다.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니라 음악과 춤, 음식이 가득한 생동감 넘치는 축제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 축제가 할로윈처럼 으스스한 행사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전혀 달랐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족들은 '오프렌다(ofrenda)'라는 제단을 만듭니다. 오프렌다란 죽은 조상을 기리기 위해 꽃과 음식, 사진을 올려놓는 제단을 말하며, 조상의 영혼이 이 제단을 통해 이승으로 건너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사진입니다. 제단에 사진이 없으면 그 영혼은 다리를 건너지 못합니다. 이 설정 하나가 영화 전체 서사를 지탱하는 뼈대입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멕시코의 '삼중 죽음(Triple Death)' 개념입니다. 이는 학계에서도 논의되는 개념으로, 첫 번째는 심장이 멈출 때, 두 번째는 땅에 묻히거나 화장될 때, 세 번째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완전히 잊힐 때입니다. 영화에서 치치가 금빛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장면이 바로 이 세 번째 죽음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보는 상황이었는데, 아이도 그 장면에서 조용해졌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출처: Smithsonian Magazine에 따르면, 픽사는 <코코> 제작을 위해 멕시코 현지 문화 전문가들과 수년간 협업하며 고증을 철저히 진행했습니다.
이 영화가 문화 표용(Cultural Appropriation), 즉 다른 문화를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는 행위라는 비판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과물을 보고 그 걱정이 기우였다고 생각합니다. 멕시코 전통 예술인 '알레브리헤(alebrijes)'를 페피타와 단테로 구현한 방식, 프리다 칼로를 실존 예술가로 자연스럽게 등장시킨 연출은 존중의 태도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디테일입니다. 알레브리헤란 색색의 기하학 무늬로 장식된 멕시코 전통 목각 동물 공예품에서 영감을 받은 상상 속 생명체입니다.
기억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철학, 동의하십니까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기억받는 것이 곧 존재"라는 명제, 얼마나 공감하시나요? 기억에 상관없이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도 처음엔 그 입장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헥터의 이야기가 그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뮤지션으로서 남긴 유산이 충분했음에도, 이승에서 완전히 잊힐 위기에 처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제단에 사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는 실제로는 살인과 도용으로 얼룩진 인물이었지만, 이승에서 기억받는 동안은 저승에서도 화려하게 살았습니다. 이 대비는 불편합니다. 기억이 반드시 진실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서사적 반전(Narrative Twist), 즉 관객이 예상한 결말을 뒤집는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상당히 정교합니다. 미구엘이 헥터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고조할아버지일 거라는 암시는 곳곳에 있었지만, 저는 두 번째 볼 때서야 그 복선들을 제대로 짚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볼 때는 감정에 너무 휩쓸려서 분석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옆에 앉은 아이가 "저 아저씨가 진짜 할아버지야?"라고 속삭였을 때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답을 확신하지 못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기억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승의 제단에 사진이 올라와 있어야 저승에서 이승으로 건너올 수 있습니다. 사진이 없으면 그 영혼은 해마다 다리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
- 이승의 살아있는 사람에게 완전히 잊히면 저승에서도 금빛 가루가 되어 최후의 소멸을 맞이합니다. 영화가 말하는 세 번째 죽음입니다.
- 반대로, 누군가 한 명이라도 기억해준다면 그 영혼은 저승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습니다. 코코가 헥터를 기억하는 한, 헥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구조가 강렬한 이유는 기억의 주체가 결국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헥터가 딸 코코를 위해 만든 '기억해 줘(Remember Me)'는 대중을 위한 히트곡이 아니라 아빠가 딸에게 건네는 소박한 자장가였습니다. 그 노래를 코코가 수십 년간 기억한 건 가사 때문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빠의 눈빛, 그 순간의 온도, 함께 나눈 시간 때문이었겠지요.
영화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이와 둘이 "기억해 줘~" 하고 흥얼거렸습니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에서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이 생각났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이런 의미구나, 그때 처음 제대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
문화적 맥락도 짚어볼 만합니다. 이 영화가 개봉한 2017년은 미국에서 멕시코인에 대한 혐오 정서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미국과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논란이 뜨거웠고, 멕시코 이민자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코코>는 멕시코 문화의 따뜻한 정서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정치적 캠페인보다 효과적인 방식으로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성취입니다.
흥미로운 사례가 중국입니다. 중국은 귀신이나 사후 세계를 묘사한 콘텐츠를 원칙적으로 상영 금지하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코코>는 이례적으로 상영 허가를 받았습니다. 담당 심의관들이 시사회에서 감동을 받아 통과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여부를 두고 다소 과장된 것 같다는 시각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만큼 감동적이라는 사실만큼은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출처: Variety에 따르면 <코코>는 중국에서 1억 8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주제곡인 'Remember Me'가 갖는 서사적 기능(Narrative Function), 즉 이야기 안에서 노래 자체가 플롯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단순한 배경 음악이 아니라, 코코의 기억을 열어 헥터를 구해내는 열쇠가 됩니다. 저는 이 연출 방식이 정말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이야기의 장식이 아닌 구조적 핵심으로 배치한 겁니다.
저승이라고 하면 어둡고 음침한 공간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영화의 저승은 그 반대입니다. 형광 조명과 수직으로 솟은 건물들, 알록달록한 군중들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이 세계관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낯설게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이 정도 저승이라면 크게 두렵지 않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 생각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목표한 바를 달성했다는 증거 아닐까요.
결국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어떤 기억을 만들고 있느냐는 것. 기억해달라고 호소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들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남을 만큼 충분히 진심이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