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창업 이야기가 그냥 천재 한 명의 성공 스토리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성공담이 아니라 파국의 기록이더군요. 수억 명을 연결한 사람이 정작 단 한 명의 친구도 곁에 남기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 아이러니가 끝나고도 한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창업 비화: 클럽 입장도 못 한 천재의 복수극
영화는 마크 주커버그가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보는 내내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상대방 말은 전혀 듣지 않고 혼자 떠들다가, 차이고 나서는 블로그에 여친 욕을 잔뜩 늘어놓는 장면은 솔직히 공감보다 불쾌함이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이 오히려 이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였습니다.
마크가 하버드 기숙사에서 만든 '페이스매시(Facemash)'는 교내 여학생 사진을 무단으로 긁어 인기투표를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페이스매시란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더 매력적인 쪽을 선택하게 만든 비교 투표 웹사이트입니다. 윤리적으로는 완전히 선을 넘은 짓이었지만, 서버를 다운시킬 만큼 폭발적인 트래픽을 끌어냈고 마크는 그것으로 유명인사가 됩니다. 그 유명세가 윙클보스 형제의 눈에 띄었고, 거기서부터 더 페이스북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이 초반부를 두고 "마크가 사실은 순수한 열정으로 만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그 낭만적 해석을 일부러 허락하지 않습니다. 동기가 분노와 열등감이었다는 것을 감독은 꽤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게 오히려 더 사실에 가까운 묘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윙클보스 형제 역할은 배우 아미 해머 한 명이 연기했습니다. 디지털 합성 기술로 두 인물을 표현한 것인데, 처음에는 정말 실제 쌍둥이인 줄 알았습니다. 중반쯤 되어서야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눈치챘고, 나중에 찾아보고서야 확인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꽤 공을 들인 영화입니다.
인간관계: 비선형 내러티브가 폭로하는 배신의 구조
이 영화의 구조 자체가 하나의 장치입니다. 비선형 내러티브(Non-linear Narrative)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두 건의 소송, 즉 윙클보스 형제와의 분쟁, 그리고 공동창업자 에두아르도 세버린과의 분쟁을 현재 시점으로 두고 창업 과정을 회상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덕분에 관객은 처음부터 "이 우정이 어떻게 깨지는가"를 알면서 보게 됩니다. 그 긴장감이 두 시간 내내 끊기지 않았습니다.
애런 소킨의 각본이 만들어내는 속사포 대사도 처음에는 '그냥 빠른 대사'로 들렸는데, 보다 보면 이것이 캐릭터 언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소킨 특유의 대사 스타일을 업계에서는 '워킹 앤 토킹(Walking and Talking)' 기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물들이 걸으면서 쏟아내는 방대한 대사는 단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상대를 압도하고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심리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마크가 왜 그렇게 말이 많은지, 왜 대화가 아니라 독백에 가까운지 각본이 조용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냅스터(Napster) 창업자 숀 파커가 등장하면서 영화의 중심 갈등이 선명해집니다. 냅스터란 1990년대 말 전 세계를 뒤흔든 P2P 방식의 음악 파일 공유 서비스로, 음반 산업 전체를 위기에 빠트린 전력이 있는 플랫폼입니다. 그 숀 파커를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연기한다는 설정이 처음엔 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꽤 잘 어울렸습니다. 화려하고 충동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는데, 바로 그 점에 마크가 매료된다는 설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숀이 마크에게 미친 영향을 둘러싸고 "결국 에두아르도를 밀어낸 건 숀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숀은 방아쇠였지만, 에두아르도를 멀리하고 싶었던 마음은 마크 안에 이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서글픈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전달하는 핵심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 마크는 관계를 원했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처음 여자친구와의 이별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 에두아르도는 우정을 믿었지만, 페이스북이 커질수록 자신이 희석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 윙클보스 형제는 아이디어를 빼앗겼다고 믿었고, 법정까지 갔지만 합의로 끝납니다.
- 숀 파커는 가장 화려하게 등장해서 가장 조용히 사라집니다.
- 마크는 그 모든 것이 끝난 뒤 혼자 남습니다.
이 구조가 그리스 비극과 닮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성공이 클수록 상실도 커지고, 정점에서 가장 외롭다는 공식을 영화는 정확히 따라갑니다.
아이러니: 가장 많이 연결된 사람의 고독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저를 가장 오래 붙들었습니다. 모든 소송이 마무리된 뒤, 마크는 혼자 노트북을 열고 예전 여자친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친구 신청을 보낸 다음 새로고침 버튼을 반복해서 누릅니다. 수억 명을 연결한 플랫폼을 만든 사람이 단 한 명의 응답을 기다리는 그 장면. 변호사가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나간 뒤의 적막함과 합쳐져서 눈물이 났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의상, 소품, 배우의 위치까지 포함하는 영화의 공간 연출 개념입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이 영화 전체에서 하버드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어둡고 습한 느낌으로 잡아냅니다. 성공의 공간이 아니라 감금의 공간처럼 보이게 만드는 조명 설계는 마크의 내면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대사였습니다.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작업한 사운드트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운드트랙(Soundtrack)이란 영화의 감정선을 강화하기 위해 장면에 맞춰 제작된 음악 전반을 가리킵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따뜻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차갑고 기계적인 전자음 위주입니다. 성공의 BGM이 왜 저렇게 불안하게 들릴까, 하고 처음엔 의아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이유를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이건 성공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페이스북을 당장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그 생각이 조용히 사라졌다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나도 해야지"를 반복했는데, 끝나고 나서는 오히려 지금 옆에 있는 사람한테 연락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감독이 원했던 반응이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Rotten Tomatoes에서도 이 영화는 현재까지 97%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닌 시대 비평으로 읽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세븐, 파이트 클럽, 조디악까지 일관되게 인간의 어두운 면을 차갑게 해부하는 시선이 반복됩니다. 출처: IMDb에 따르면 소셜 네트워크는 그의 커리어에서 아카데미 각본상을 포함해 3개 부문 수상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그 수상 목록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공개된 2010년 이후 디지털 플랫폼과 인간관계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화려한 연출이나 탄탄한 각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수백 명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문득 외롭다는 느낌, 그 낯선 감각을 2010년에 이미 정확하게 포착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유명한 창업 신화를 기대하기보다는 한 사람의 실패한 관계를 따라가는 마음으로 보시길 권합니다.